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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더 문제

관리자관리자 ·
11-12-165834
메이가 소매치기랑 경찰서에 가게 된 것은 메이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상황에 떠밀렸기 때문이었지요.

 

사건이 커지느라 소매치기는 수퍼맨 아저씨를 비롯한 군중들에게 반 죽을 정도로 뭇매를 맞았고 가까이 있던 경찰들까지 뛰어 왔던 것입니다. 수퍼맨 아저씨가 나서기 전까진 모른 척 침묵하던 군중들이 이번엔 적극적으로 경찰관들에게 소매치기의 처벌을 요구하며 등을 떠밀었고 수퍼맨 아저씨가 증인이 되겠다며자원까지 하는 바람에 정작 명색이 피해자인 메이가 경찰과 군중 앞에서 경찰서에 가기 싫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폴섹(POLSEK)이라 부르는, 아마도 한국의 지구대 정도 수준이 되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스넨에서 쯤빠까마스(Cempaka Mas)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있는 바로 그 폴섹이었죠.

 

하지만 난 직원들에게 어떤 경우에라도 경찰들과 엮이지 말 것을 지시하곤 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있지요. 아무리 싫어도 운전면허증 갱신하러 매년 다안모곳(Daan Mogot)에 있는 경찰청 면허시험장에 가야만 했고 매년 한 두 번 교통위반으로 걸려 경찰과 네고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경찰들을 경원하는 이유는 이런 겁니다. 예를 들어 술라웨시 북부 마나도(Manado) 출신들 중 내가 자카르타에서 만나본 6-7명 전원이 하나같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사기성이 농후하다면 실제로는 훌륭한 마나도 출신들이 많다 하더라도 난 당연히 마나도 출신들은 다 사기꾼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채용한 여직원들 대부분이 수마트라 북부 출신인 바딱(Batak)족 남자들이 임신시키고 도망간 경험이 있거나 그들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걸 보며 비록 바딱족 사람들이 군, 경찰은 물론 정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처한 현실 속에서의 바딱 사람들은 터무니 없는 성욕에 사로잡혀 항상 여자들에게 껄떡거리는 음험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십수년간, 교통위반으로 걸렸던 경우까지 모두 포함해서 내가 경찰을 대면해야만 했던 순간 돈을 요구하지 않은 경찰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90년대 후반 밤늦은 시간에 여러 마리 말들이 모는 마차 동상이 있는 모나스 앞 로터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두 번 돈을 뜯긴 일은 너무나 터무니 없었기에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손님들을 태우고 내가 운전하는 중이었어요 첫 번 째 걸린 이유는 내가 빨간 불에 정지선을 밟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반 바퀴 더 돌고 두 번 째 걸린 이유는 로터리에서 금지된 차선변경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정지선을 밟았지만 넘은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로터리에는 아스팔트를 새로 깔아 차선은 그어져 있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99년도 밤 12경에 그 로터리에서 경관 한 명 당 50만 루피아씩 100만 루피아를 뜯겼습니다. 당시엔 보통 2만 루피아 정도가 일반적 시세였는데 말이죠. 물론 뻗대 보기도 하고 흥정도 했으면 크게 줄일 수도 있었겠지만 빨리 호텔에 모셔다 줘야 할 손님들이 차에 타고 있었다는 게 내게 큰 약점이었죠.

 

인도네시아에도 타의 모범이 되고 만인이 존경해 마지 않는 청렴결백한 청백리 경찰관이 어딘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겪은 경찰들은 모두 돈을 뜯었으므로 내가 경찰이라면 치를 떨고 가능하면 멀리 하며 경멸해 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출퇴근시간에 수디르만 거리나 도심 톨에서 앞뒤좌우로 꼼짝달싹 못하게 막히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아마도 장관 차량쯤으로 추정되는 고급 승용차들 앞에서 경광등을 점멸하고 귀를 찌르는 경음을 울리며 일반 차량들을 마구 밀어 붙이는 경찰차를 보면 괜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경찰들 스스로는 나름대로 민중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딱지를 뗀 며칠 후 거의 하루 종일 소비하며 즉심을 받거나 벌금을 납부하고 면허증을 찾아 가는 번거로움을 자기가 그 벌금에 훨씬 못미치는 돈을 받고 보내 줌으로써 서민 경제활동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말이죠. 내 오랜 파트너인 릴리의 형부 수라흐만(Surahman)은 십수년 전에도 경찰군 상사였으니 한국 군대로 치면 지금은 원사쯤 되었을 겁니다. 당시 자신을 부통령 ‘보디가드’라고 소개했던 그는 나로 하여금 영화 보디가드에 나오는 케빈 코스트너를 연상시키려 했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폼나는 경찰 사이카를 몰고 다니는 교통경찰이었으므로 아마도 부통령 일행 차량의 선도를 자주 맡았던 것 정도가 아닐까 추정할 따름입니다. 아무튼 수라흐만은 스스로 매우 청렴한 경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자랑하듯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어제 밤 불심검문을 하다가 STNK를 제시하지 못하는 차량을 하나 잡았어요. 뭐, 알다시피 도난차량들이 STNK 없이 많이 돌아 다니죠?”

 

STNK는 차량등록증이죠. 그래서 잡아 넣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남들 같으면 한 몫 챙길 상황이었죠. 하지만 시민들 사정도 봐 줘야죠. 그래서 10만 루피아만 받고 보내 주고 나서 동료들한테 도대체 왜 그러냐는 핀잔 많이 들었어요.”

 

이건 또 뭔 소리…?
어차피 돈을 뜯었으니 내가 보기엔 오십보백보인데 그에게는 그게 청렴함의 증거였던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도네시아인들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한국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과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문제뿐이었다면 메이의 경우처럼 소매치기을 잡은 상황에서 경찰서에 가는 것을 크게 반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피해자로서 경찰에 신고를 하는 순간 내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기술한 스넨 환승역에서 격투기 개인전을 벌일 뻔 했던 시기 즈음에 ATM 카드 사고를 당한 일이 있습니다. 요즘은 거래 건마다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야 하지만 그때는 한번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여러 건의 거래를 한꺼번에 할 수 있던 시절이었어요. 그날 난 매우 서두르다가 ATM 카드를 기계에서 빼지 않은 채 나왔다가 그날 밤 늦게 시내 반대편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죠. 게다가 카드를 놓고 나왔을 때 ATM 화면에 ‘거래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떠있는 상태였어요, 전화로 급히 카드 정지신청을 했지만 이미 내 구좌는 잔고가 거덜난 상태였습니다. 재난이었죠. 게다가 내가 이미 비밀번호를 입력해 놓은 상태였으므로 은행에서는 그것을 은행의 과실이 없는 정상적인 거래로 인정하였고 난 은행으로부터는 어떠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해당 은행지점에 문의하고 경찰서에 갈 때까지만 해도 잃어버린 돈을 되찿을 수도 있을 것이란 실낱 같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범인은 분명 내 뒤에 ATM 박스로 들어온 사람일 텐데 내가 그날 거래했던 명세표에 시간이 찍혀 있었고 그 ATM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기 때문에 범행시간은 내가 그 명세표를 받은 지 최대 5분 사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정확한 범행시간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ATM 박스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범인이 거기 찍혔을 것이 분명했지요. 그러니 범인 얼굴이 찍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죠. 내 카드가 거기 끼워져 있을지 몰랐을 테니 우발적인 범행이었을 것이고 그러니 그 범인이 처음부터 CCTV로부터 얼굴을 철저히 감추려 했을 리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범인은 내 구좌의 잔액을 깔리만탄의 반자르마신(Banjarmasin)으로 송금했다는 것을 은행으로부터 확인도 받았어요. 수취인의 구좌에서 해당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분명 가능하다는 얘기였죠. 그 수취인을 통해 내 카드로 돈을 보낸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은행에서는 규정상 그런 고객정보를 내게 직접 알려 줄 수 없으므로 경찰 신고 후 경찰 측에서 정식 요청이 들어오면 CCTV와 고객정보를 확인해 줄 수 있다고 얘기했었죠. 그래서 난 범인을 거의 잡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의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서를 꾸미는 형사가 나를 피의자라고 착각하는 것이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조서를 마치기까지 여섯 시간 정도 걸려 진이 다 빠졌는데 형사는 내 여권과 KITAS를 압수하듯 가져가서는 좀처럼 돌려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생각하기엔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들을 집요하게 물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한달 월급 얼마 받으쇼?”

“당신 현지처 있죠? 조사하면 다 나와, 솔직하게 말해요!”

“당신 사는 집은 산 거요? 아니면 렌트한 거요? 얼마 주고 몇 년 렌트한 거요?”

“여기 이 이민국 도장, 이거 작년 거 같은데 올해 건 어디 있소? 당신 혹시 불법 체류하고 있는 거 아니요?”

 

이 친구들은 날 털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피해자인데 말이죠. 게다가 그 질문들 대부분은 내 재산규모를 파악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범인을 잡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파트너 릴리가 경찰들을 얼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간신히 내 여권과 KITAS를 되찾아 주었어요. 이미 ATM 사고로 적잖은 손실을 입은 상태에서 이번엔 경찰들에게 뒷덜미를 칼로 찔린 기분이었습니다. 조서를 쓰고 KITAS 등을 되찾으면서 난 지갑에 남은 돈까지 털어 수고비를 줘야 했고 릴리도 담배를 두 보루나 사다 주었던 것입니다. 난 바보 취급을 받으며 철저히 농락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난 구당가람 담배 작은 팩으로 사다 줘.”

 

그들은 마치 사환을 부리듯 릴리에게 그런 천연덕스러운 주문까지 했습니다.
사실 이제 현지 경찰들의 습성을 대부분 알고 난 지금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요. 그들은 노점 식당에서 밥먹고 돈안내기를 밥먹듯 하고 심지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싸가기도 합니다. 역시 무상으로요. 저녁마다 포장마치들이 들어서는 길가에 경찰차를 몰고 들어가 보호비 비슷한 성격의 돈을 자타(Jatah)라 부트며 뜯어 내고 심지어 쯤빠까마스 건너편 정류장에서는 밤이면 택시, 트럭기사들에게 몸파는, 하지만 개시도 못한 30-40대 아줌마들에게도 매일 5만 루피아씩을 뜯어 냅니다. 돈이 없으면 담배로 받기도 하고요. 교통경찰들은 헬멧을 쓰지 않거나 서류가 미비한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가기도 하는데 한번은 메이와 함께 나갔던 남자 직원 한 명은 돈이 5천 루피아 밖에 없다고 하자 주머니를 모두 까뒤집히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5천 루피아를 뜯긴 건 두말할 나위 없고요. 옛날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학교 근처 양아치 형님들이 그렇게 삥을 뜯곤 했지요. 여기선 경찰이 그럽니다.

 

하지만 당시엔 내가 직접 피해를 신고하러 간 것이 처음이었으므로 쇼크를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환멸을 느끼죠. 물론 경찰하고만 그런 건 아닙니다. 이민국도 그렇고 노동부도 그렇고 심지어 세무서, 소방서까지 부정부패 측면에서는 일사불란하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요. ‘공무원 개인의 배타적 번영’이라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경찰과의 문제에서 더욱 환멸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이미 적잖은 피해를 입어 버린 피해자를 도와야 하는 본연의 의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번엔 자기들이 직접 그 피해자의 주머니를 또 짜내려 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곳은 구눙 사하리(Gunung Sahari)에서 마타람(Mataram) 방면으로 가다 보면 스넨 고가도로를 지나 왼쪽에 위치한 자카르타 중부경찰서였고 그곳을 나서면서 그 모든 확보 가능한 단서들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내가 ATM 사고로 잃은 돈을 경찰을 통해 되찾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범인이 있는 곳을 알았어요.”

 

일주일쯤 후 형사로부터 그런 전화를 받고 난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범인이 곧 잡힐 모양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걸 미리 통보해 줄 정도로 친절하기까지…?

 

“반자르마신에으로 잡으려 가는데 우리 형사들 다섯 명쯤 가야 해요. 사흘쯤 걸릴 것 같으니 다섯명 비행기 값에 호텔비 등등 대략 2천만 루피아 정도 들어요. 범인 잡아 줄 테니 비용 댈 수 있죠?”

 

만약 그 형사가 눈 앞에 있었으면 그렇게 말하는 입을 콱! 물어 버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난 그 사건의 진전사항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결국엔 잡혔을 것이라고 난 믿습니다. CCTV에 나온 얼굴, 은행에서 받은 수취인의 인적사항 등 모든 단서와 증거들을 가지고서 잡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그리고 경찰들은 아마도 그 범인으로부터 내 구좌에서 훔친 돈,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을 쥐어 짜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부분은 순전히 상상이지만 현실에 비추어 너무나 설득력 있는 상상이지요.

 

언젠가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지 모르지만 메이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일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데뽁에서 자기 핸드폰 가게를 3개까지 늘렸던 메이는 바딱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 미혼모로 버려지는 과정에서 3년간 동고동락했던 친구가 가게 재고를 몽땅 훔쳐 달아난 일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들에게 사준 밥값, 핸드폰 공짜 뿔사 충전해 준 것만 천만 루피아가 넘었고 내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부자바 어딘가로 도망간 그 친구를 잡겠다며 경찰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해 오자 이미 장사 밑천이 모두 털린 상태에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메이는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메이는 피자헛 파트타임 직원, 노래방 경리 등으로 일하다가 나와 처음 만나던 때까지도 고생고생하며 그 당시의 빚을 조금씩 갚고 있었죠. 그래서 메이는 경찰과 엮이지 말라는 내 말을 100%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서에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이번엔 차량을 도난 당했거든요.

 

당시 운전사가 있긴 했지만 그는 대개 아내의 차를 몰았고 난 자가운전을 했으니 운전사가 갖고 튄 것은 아닌데 운전사가 아무런 관련이 없기는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인들 차량도난사고가 절정에 이르고 있던 시절 내 사무실 앞 주차장에 세워 놓았던, 그래서 난 건물 안, 차는 건물 밖이지만 물리적인 거리로는 1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경보음도 울리지 않은 채, 아니면 내 주의를 끌 만큼 오래 울리지 않은 채 차량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콤플렉스 안의 경비원들은 서로 모른다고 발을 빼더니 급기야 멤버쉽 스티커가 있는 차량은 자유롭게 출입하게 놔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책임을 피했습니다.

 

사실 경찰 훙내를 내기에 급급한 이 나라 경비원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요?  예전 내가 살던 주택가의 경비원 수십명은 98년 자카르타 폭동이 일어나 폭도들이 주택단지 앞에서 농성하며 세를 과시하자 한 명도 남김없이 도망가 버렸고 모르긴 몰라도 그 중 몇몇은 폭도들과 함께 약탈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는 짓은 경찰들과 비슷해서 루꼬 단지의 경비원들은 그로박(Grobak)이라 부르는 리어카 비슷한 것을 끌고 들어오는 행상들에게 출입비 명목으로 돈이나 담배를 뜯고 루꼬 식당, 사무실 등에서 때로는 경비비 명목으로 턱도 없는 금액을 요구하기도 하며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4성, 5성급 호텔의 야간 경비원들은 외국인 투숙객의 회포를 풀어주고 새벽에 돌아가는 몸파는 아가씨들을 가로막고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하며 돈을 뜯어 내지요.

 

내가 차를 잃어 버릴 때 운전사가 키를 복사해서 범인들에게 넘겨 주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강했습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얼마 전 끌라빠가딩에서 차량 절도범 일당이 체포되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우리 집 기사로도 잠시 일했었던 수타라(Sutara)라고 하는 친구였어요. 이 친구도 입만 열면 나오는 게 거짓말이어서 자기가 원래 군인이었는데 바람을 피워 잘렸다는 둥, 부인이 4명이라는 둥 하는 얘기를 다른 운전사들에게 종종 했었고 이 싸가지 없는 녀석이 우리 집에서 나간 후 당시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던 내 딸에게 수작을 거는 SMS를 보내오기도 해 만나면 때려 죽인다고 이를 갈고 있었죠. 그런데 이 친구가 끌라빠가딩의 아파트들을 다니며 안면이 있는 운전사들에게 차 키를 복사해 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복사한 키를 넘겨 받으면 수타라의 일당이 차를 훔치고 나중에 운전사에게 사례를 하는 그런 방식이었던 것이죠.

 

물론 내 경우는 수타라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차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점에서 복사키 없이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빠른 속도로 차를 훔칠 수 있는 전문가가 인도네시아에 정말 있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경찰에서는 운전사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던 것은 만약 내가 운전사에 대해 말한다면 내 운전사가 개박살 날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차를 찾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이 경찰은 계속 나와 내 사무실 주변을 맴돌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우려를 더욱 극명하게 해 주었던 것은 워낙 경찰에 데인 탓에 이번 도난신고를 내가 가지 않고 메이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돈보스코(Don Bosco) 학원 가까이에 있는 끌라빠가딩 폴섹의 한 경관은 내가 직접 신고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며 메이에게 네가 지금 이런저런 법조항을 어기고 있으니 나 대신 신고한다고 경찰서에 또 찾아 오면 체포해서 유치장에 넣는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가서 신고를 했지만 사건이 벌어진 지 이틀 후에 조서를 꾸민다는 사실을 경찰에서는 또 트집을 잡았고 월급과 현지처 얘기를 또 물어봤던 것은 물론이고 조서 만든 수고비로 20만 루피아를 줘야 했습니다.  차를 잃어 버린 것은 너무나 속쓰린 일이었지만 경찰을 통해 차를 되찮으리란 기대는 애당초 하지도 않았으므로 심한 환멸까지 느끼진 않았습니다.

 

2주일쯤 지나 난 그 폴섹에서 조서를 꾸민 경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경과를 알아 보려는 것이었죠. 대답하는 경관은 의외로 공손했고 이번엔 출장비를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그 대답 자체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아직 진전이 없어요. 어떻게 그쪽에서는 아직 차를 못찾았나요? 차를 혹시 찾게 되면 연락 주세요.”

 

그건 경찰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말이 아닌가요?
차량 도난 건도 그 전화가 마지막이었고 나도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경찰서에 이번엔 메이가 피해자 입장이 되어 간 것입니다.
수퍼맨 아저씨는 입에 거품을 물며 열띤 증언을 했고 옷이 피투성이가 된 소매치기는 경찰서에서도 오가는 경관들에게 불쌍할 정도로 더 얻어 맞았답니다. 메이는 험악한 경찰서 분위기에 겁먹어 주눅이 들었고 담당 경관은 메이가 겁먹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스넨 환승역에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던 메이는 경찰서에서 다시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증인으로 왔던 수퍼맨 아저씨는 증언을 마치고 돌아가 버려 경찰서엔 메이만 혼자 덩그러니 남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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