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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웨이도 문제

관리자관리자 ·
11-12-166106
 
또 하루의 일상 (2)

 

다음날인 토요일, 난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또 뜬금없이 청소용 플라스틱 버켓(바께쓰라고 해야 할까요?)과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꼭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한번 눈에 띄어 버린 걸 못 본채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버켓에 새까만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사무실 청소는 직원들만의 책임이라 생각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쓸만한 예쁘고 튼튼한 청소도구들을 사놓고 틈틈이 직접 청소도 하고 청소도구도 꼼꼼히 닦아 놓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편에 언급했던 랜달, 헤르디 같은 친구들도 가끔 청소를 했는데 난 쓰레기가 더러운 것이지 쓰레기 치우는 청소도구들은 쓰레기통까지 포함하여 모두 반짝반짝 윤이 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친구들은 청소도구와 쓰레기를 동급으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어느 한쪽 생각이 틀렸다기보다 그만큼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들은 그런 사소한 일에서조차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아끼던 청소 버켓 바닥에도 어느 새 새까만 찌든 때가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메이가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내가 사무실 한 가운데에서 그 버켓을 끼고 앉아 비누 묻힌 구두솔로 박박 바닥을 긁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매일 보던 얼굴이지만 메이가 눈 앞에 나타난 순간 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케이블 TV의 스타무비 채널에서 한창 워킹데드 (The Walking Dead) 시즌 2를 방영해 주고 있던 시기였죠. 별로 살이 없는 얼굴에 한껏 내려온 다크써클이 광대뼈를 덮고 있는 메이의 모습은 그 드라마에 나오는 좀비를 연상케 했거든요. 그 분장에 충실하려는 듯 메이는 한쪽 다리까지 절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어제 내내 연락도 안되고…, 발은 또 왜 그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목청을 가다듬으며 구두솔로 메이의 다리를 가리키는데 솔에 묻은 비누거품들이 사무실 타일바닥으로 튀었습니다. 아침부터 버켓을 끼고 앉은 내 꼴이 우스웠는지, 아니면 그런 질문 자체가 허망했던 것인지 메이가 지어 보인 씁쓸한 미소는 당장 개그콘서트의 김준호를 연상케 했습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녀.... 
같기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리를 저는 것뿐 아니라 메이의 전체적인 행색도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오늘도 또 영업하고 수금하러 함께 나가야 할 텐데 메이는 늘 신던 운동화 대신 다 떨어진 보라색 고무슬리퍼를 신고 있었죠. 그리고 내가 영업용으로 사준 튼튼하고 예쁘장한 에이거(EIGER) 브랜드의 가방 대신에 색상이 다 바랜 더럽고 허름한 푸른색 가방을 옆으로 매고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했어요. 그리고 같기도라고 생각했던 그 미소가 일그러지면서 메이는 훌쩍거리며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메이는 늘 나와 함께 영업을 다녔습니다.
회사 오토바이들이 있었지만 랜달과 헤르디를 내보낸 후 그 오토바이를 운전할 사람도 없었고 메이 자신도 운전을 못했어요. 오젝 기사를 임대하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서민의 교통수단이라고 하기엔 너무 치솟고 만 오젝 비용은 운전사를 채용해 쓰는 비용의 몇 배가 넘었고 그나마 거리가 먼 목적지엔 잘 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오토바이를 운용할 직원이 들어올 때까지 당분간 내가 메이의 운전사가 되어 주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함께 다니다가 몇 개월 만에 메이가 처음으로 혼자 거리에 나선 날 연락이 두절되었던 것입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 메시지를 여러 통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습니다. 그날 송년회에서 돌아온 시간이 이미 11시가 넘지 않았다면 메이 집에 직접 찾아 갔을 텐데 말이죠. 쌤플 가방 안의 쌤플들만도 수천만 루피아 정도의 가치가 되었고 월초라 수금한 돈도 꽤 액수가 되었을 것이므로 어쩌면 강도를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메이가 그날 우타이(Utay)와 함께 움직이기로 한 계획을 일주일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으리라 믿었고 그래서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타이는 그리 믿음이 가는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원래 오젝 기사로 잔뼈가 굵은 그를 몇 년 전에 우리 회사에 채용한 일이 있었지만 사흘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두었던 전력 때문이었죠. 인도네시아의 빈곤층의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는 상관에게 지시 받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것입니다. 오젝 기사로서 오토바이를 모는 일은 매일 푼돈을 버는 일이었지만 상관의 간섭을 받을 리 없는 어엿한 자영업이었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었죠. 그것이 그가 우리 회사를 간단히 그만 두고 다시 오젝을 몰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메이의 안전이라는 부분에서 우타이를 신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메이의 동생 리스티(Listy)의 남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전문대학까지 나온 리스티가 왜 하필 학벌도 없고 집안도 형편없는 우타이와 결혼했는지 아직까지 미스터리이지만 명색이 메이의 제부이니 아무리 무책임한 남자라 해도 자기 처형이 강도를 당하게 되는 상황까지 손놓고 있을 리는 절대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날 아침 메이의 행색은 전날 뭔가 사고를 당한 것이 분명한 모습이었고 왼쪽 다리만 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몸 왼쪽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전 랜달이 몰던 오토바이 뒤에 탔다가 다안 모곳(Daan Mogot) 버스웨이에 내동댕이쳐져 그 힘들다는 아랫배 착지에 멋지게 성공하지만 뒤이어 달려온 대형 버스에 깔릴 뻔 했던 그날 밤도 메이는 비슷한 행색을 하고 회사에 돌아왔었습니다.

 

“우타이랑 출발한 게 아니었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금요일 아침, 일주일 전부터 약속을 해 두었는데도 우타이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필사적으로 발을 빼더랍니다. 메이와 출발하면 하루 종일 쉴새 없이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우타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죠. 예전에 데리고 있던 직원들은 중간에 옆으로 새기 일쑤였어요. 그러고선 가지도 않은 곳을 다녀왔다며 그럴싸하게 포장된 보고를 했지만 그 화려한 활동내용에 비해 결과는 늘 형편없었으므로 얘들이 또 뻥을 친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직원들로서는 엄청난 숫자의 목적지들을 매일 커버하면서 곧이곧대로 보고하고 거기에 적잖은 매출실적을 가지고 돌아오는 메이가 늘 눈에 가시였고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죠. 나조차 그게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 회사에 직원들이 득실거릴 때에도 명색이 필드캡틴임에도 불구하고 메이는 직원들이 경원하는 대상이었고 그녀와 함께 출발하는 것을 모두 꺼려했지요.

 

우타이가 메이를 피한 것은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지만 여직원이 혼자 다니는 것은 사람과 제품, 그리고 수금한 돈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업무수칙에 크게 위배되는 일이었어요. 그런 상황을 알았다면 절대 그렇게 출발시킬 리 없는 일이었고 그날 수금은 펑크가 날 판이었는데 메이는 별 일 없을 거라 확신하면서 내게 별다른 연락을 내지 않은 채 다른 오젝을 수배해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꼭 이럴 때마다 머피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오젝 기사는 렌뗑 아궁(Lenteng Agung)까지 달려간 상태에서 자기가 오토바이 등록증이 없다며 경찰의 불심검문이 우려되니 메이에게 다른 오젝을 구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은 메이가 설명해 준 그날의 일정을 그 오젝기사는 아무리 보수를 많이 줘도 달성할 수 없는 과다한 업무량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건 기본적으로 우타이가 발을 뺀 것과 같은 이유였던 것입니다. 돈은 많이 벌고 싶지만 일은 그리 열심히 하기 싫은,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욕망이 현지 빈곤층에서는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메이는 거기서부터 비싼 오젝을 포기하고 앙꼿(Angkot)등 다른 대중교통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메이는 비록 싸지만 시간과 노력, 인내심이 턱없이 많이 필요하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예전에도 오토바이들이 부족하고 일이 다급할 땐 한 팀이 앙꼿을 타고 출발하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었죠. 8인승 밴을 개조한 소형버스 앙꼿은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발인 것이 맞지만 대개의 경우 매번 정차할 때마다 빈자리가 다 채워져야 출발하는, 그래서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교통수단입니다. 하지만 메이는 반둥에서도 앙꼿을 타고 돌아 다니며 적잖은 매출을 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팀 단위로 움직였던 것입니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국가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인도네시아에서 젊은 여자 혼자 상당한 현금이 든 가방을 매고 앙꼿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우범지대를 지난다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메이는 그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맙니다. 앙꼿을 타고 다니던 오후 늦게까지도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하필 다른 대중교통수단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다는 버스웨이에 이르러서 말이죠. 오후 5시가 막 넘어가던 시간에 메이는 스넨(Sene)의 버스웨이 환승역에서 줄을 서 있었습니다. 스넨은 블록엠(Blok M), 글로독(Glodok), 망가두아(Mangga Dua), 따나아방(Tanah Abang) 등과 함께 자카르타에서 서민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시장통이자 동시에 악명높은 우범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좁다란 버스웨이 역사 안은 찌는 듯한 더위아 습기만 아니라면 그나마 좀 더 안전한 편이었고 버스웨이 버스에는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차장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소매치기들과 뻥아멘(pengamen)들이 설치는 일반 버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전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줄을 선 끝에 메이의 순서가 되었고 타려는 승객들과 내리려는 승객들이 버스 입구에서 잠시 뒤엉킨 순간 버스 안쪽에 있던 승객 한 명이 그 사이를 빠르게 비집고 나가며 메이가 매고 있던 가방을 낚아 챘던 것입니다.

 

이미 한쪽 발을 버스 안에 디딘 메이가 가방과 함께 당겨져 상체가 뒤로 꺾이면서 뒤따라 버스에 오르던 승객 두 명도 떠밀려 비명을 지르며 플랫폼 밑 도로로 사정없이 추락해 버렸습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버스와 환승역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승객을 가장했던 소매치기는 그 와중에서도 메이의 가방끈을 사정없이 당겨댔고 몸이 완전히 꺾인 상태에서도 메이는 가방 몸체를 껴안은 채 비명을 지르며 사투를 벌였다는 겁니다.

 

메이의 얘기를 들으며 그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나 역시 수년전 버스웨이를 즐겨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직도 자카르타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던 아이들에게 한대 밖에 없던 차를 전적으로 내주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방물장수처럼 제품이 든 가방을 주렁주렁 든 채 버스웨이를 타고 자카르타 천지를 돌아다녔지요. 메이가 오젝 대신 앙꼿을 선택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나 역시 비싼 택시를 타고 다닐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내 도로에 시정부 맘대로 줄 긋고 그 도로 만들도록 세금 내준 납세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고 한줌도 안되는 트랜스자카르타 버스들만 다니게 해놓은 턱없이 불공평한 이 버스웨이가 그 엄청난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사용자들에게는 그나마 가장 빠르고 안전한 대중교통수단임이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버스웨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사건이 있었죠. 공교롭게도 그 사건의 장소도 스넨 환승역이었습니다. 버스 승강구 쪽에 자리잡고 있던 비켜줄 충분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 짐을 들고 나가려는 내 길목을 한 남자가 틀어 막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에게 무슨 일이 있어 그렇게 심사가 비틀려 있었는지 알 길 없지만 나 역시 꼭 내려야 했으니 마치 코너킥 찰 때 골대 앞에서 축구선수들 몸싸움 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버스 문이 열리고 내가 막 내리려 하는 순간 그 남자가 내 목덜미를 주먹으로 내려쳤던 것입니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쯤에 복장으로 봐서도 시장통 양아치 같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투명인간이 되면 여자 목욕탕부터 가보겠다는 남자들의 음흉한 염원처럼 자기가 절대 걸리지 않으리란 확신만 서면 무슨 짓이든 하려 드는 것도 인지상정일 텐데 그게 인도네시아에서는 좀 더 심한 걸까요? 그는 내가 그 많은 짐을 가지고 움직이니 한 번 버스에서 내리면 절대 다시 타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자긴 안전하리라 생각하고 주먹을 휘둘렀던 모양이지만 난 짐을 플랫폼에 버리듯 던져 놓고 다시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 친구 멱살을 잡고 끌고 나왔죠. 환승역에서 많은 현지인들에게 둘러 쌓여 이제 막 한-인니 간 국제격투기 개인전 경기가 벌어질 참이었는데 다행히도(?) 의중을 꿰뚫린 이 친구가 크게 당황하며 플랫폼을 떠나려는 버스에 매미처럼 허둥지둥 매달리고 그걸 또 떨어 내려는 경비원 복장의 차장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사건을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말았죠. 한 대 얻어 맞기만 하고 끝나버렸으니 그땐 억울해서 울화가 치밀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게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잘 되도 현지인을 줘 팬 죄로 구경꾼들에 단체로 린치를 당하거나 경찰서 유치장에서 조서를 꾸며야 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엔 내가 거꾸로 더 얻어 맞고 병원신세를 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죠. 그리고 양쪽의 경우 모두 그때 내가 들고 갔던 가방들과 그 내용물들은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시점에 내가 그 일을 겪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이번엔 메이가 소매치기와 일전을 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개의 소매치기 범행은 순식간에 벌어지는 것이고 정신을 차렸을 때 범인은 이미 인파 속으로 숨어 버린 후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메이가 당한 상황은 소매치기라기 보다는 날치기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이렇게 소매치기가 자기 얼굴이 노출된 채 가방끈을 당기며 장시간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건 가방과 그 내용물을 지키려는 메이의 필사적인 방어도 주효했지만 정작 큰 이유는 그 에이거(EIGER) 브랜드의 가방이 워낙 튼튼한 제품이라는 사실이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둥에 본사를 두고 등산용 배낭을 만들던 에이거는 그 즈음 보디팩(Bodypack)이라는 브랜드를 추가로 출시했고 배낭뿐 아니라 텐트, 신발까지 아우르는 등산용품 전품목과 컴퓨터 가방까지 생산하여 전국 주요 몰에 입점한 직영점에서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엄청난 내구성과 나름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화점의 국제브랜드 제품들에 비해 5분의 1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이었죠. 그 내구성에 반한 나는 집이나 회사에서 쓰는 가방들을 모두 에이거 제품으로 구매했고 1년에 한두번 골프모임에 나갈 때에도 에이거 등산화를 신고 나가곤 했습니다.

 

반년쯤 전 소고(Sogo) 백화점에 다니는 메이의 막내 여동생 예니(Yeni)가 오젝을 타고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일당에게 가방을 날치기 당한 일이 있었어요. 양쪽 오토바이가 모두 제법 고속으로 달리는 중이었으므로 가방을 낚아 채자 예니도 덩달아 잡아 채여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쳐박히는 큰 사고를 당했었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가방끈이 끊어지면서 가방도 놓쳐 버렸고요. 그 사고로 허리와 머리를 심하게 다친 예니는 가방을 날치기 당했을 뿐 아니라 그 가방 안에 있던 돈의 수십 배를 치료비로 내야만 했습니다. 정말 공교롭게도 그 사건이 벌어진 곳도 스넨 사거리의 고가도로 위였으니 메이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곳과 불과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메이의 상황이 예니와는 사뭇 달랐던 것은 내가 메이에게 사준 영업용 가방이 그 와중에서 금속 연결고리가 크게 휘면서도 줄이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메이보다 소매치기가 더 당황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버스 안이나 승강장, 그리고 승강장과 연결된 육교 계단엔 최소한 수십명의 현지인들이 있었지만 아수라장이 된 버스 입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저 어떤 식으로든 소란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을 지도 모르죠. 심지어 버스 안에서 메이의 다른 한쪽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던 경비원도 이렇게 소리를 질렀답니다.

 

“수다!  수다!!”

 

Sudah라는 말은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여기선 ‘됐으니 줘버리세요!” 정도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라면 오히려 승객이 물건을 잃지 않도록 돕거나 더욱 궁극적으로는 그 소매치기에게 달려 들어 제압해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 경비원의 우선순위는 승객이나 그 소유물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승강장에서 난리 블루스가 벌어지건 말건 버스의 문을 빨리 닫고 버스를 출발시키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승강장 밑으로 떨어져 부상을 입은 승객들도 있는데 말이죠.

 

그러던 순간 경비원 대신 승강장과 연결된 계단 저 뒤쪽에서 한 아저씨가 수퍼맨처럼 날아와 소매치기를 한 주먹에 때려 눕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순간 군중심리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남의 일이라 치부하고 자기 코 앞에서 메이의 가방을 뻇으려 가방끈을 옥죄어 당기는 소매치기를 못본 척하고 있던 주변 남자들이 어느새 이 수퍼맨 아저씨에게 가세해 소매치기를 마구 짓밟아 대기기 시작했던 것이죠. 버스 경비원도 내려오고 인근 경찰들이 달려 와 군중들을 뜯어 말렸을 때 소매치기는 완전히 피떡이 된 채 살려 달라며 수퍼맨 아저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고 있었습니다. 메이는 수금한 돈이 든 가방을 그렇게 간신히 지켜 냈지만 그 와중에 벗겨져 승강장 밑으로 떨어진 신발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만 하길 다행이다. 신발은 내가 새로 사줄게. 결국 소매치기 당하진 않은 거네. 그런데 가방은 어떻게 된 거야? 고치는 데 맡겼어?”

“그게….”

 

메이가 다음에 한 얘기에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경찰이 무슨 권리로 네 가방을 압수해?!?”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는데 곧 후회했습니다. 장담컨데 메이는 전날 충분히 고생을 했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런 고생을 하며 메이가 소매치기로부터 어렵게 지켜낸 가방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경찰이 압수한단 말입니까? 이런 허망한 경우가 어디 있을까요?  인도네시아의 경찰이 누굽니까? 앞서 언급했지요? 민중이 짊어지고 가야 할 썩고 더러운 십자가라고요. 그들이 우리 돈가방을 순순히 돌려줄 리 없으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고 몸이 저 지경이 되도록 소매치기로부터 가방을 지켜내려 했던 메이의 노력이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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