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시기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언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보는 게 좋다. 특히 날씨나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일 수록 고려해 볼 사항이다.
우리가 인도네시아 여행을 몇 번 계획했다가 포기한 이유는 날씨 때문이었다. 휴가를 겹쳐 받으려면 성탄절을 전후해서 가는 게 젤 좋은데, 겨울은 우기라고 했다. 지겹도록 비가 많이 오는 동네에 살기 때문에 여행가서 빗 속을 헤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겨울에 휴가를 가게 되면 인도네시아는 자동으로 제외되었다.
그러다 이번 시월에 여행 계획을 잡으며 인도네시아가 다시 수면에 떠올랐다. 하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10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고 했다. 어쩔까 싶었지만 강행하기로 했다. 우기가 중순부터 시작될 수도 있고, 말쯤에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니 운에 맡기기로 했다.
아무래도 우기가 시작되는 계절이라면 건기 때보다 조금 시원할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우린 둘 다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더울 때 여행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지 않으면서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다면 10월은 여행하기에 최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10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우기가 시작되면 쫄딱 망하는 거였다. 우린 여행의 운을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역시나! 하늘은 우릴 도우셨다. 예상이 정확하게 집중했다. 10월 중순까지 자바 쪽엔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고, 우기는 여행이 끝나갈 즈음인 10월 말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기를 전후로 날씨는 무덥지 않았다. 덥긴 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대가 높은 산간 오지 지역은 초가을처럼 쌀쌀했기 때문에 중간 중간에 더위를 피할 수 있어 좋았다.
현지인들 말에 의하면 예년엔 우기가 9월부터 찾아왔는데, 점점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건기가 길어지고 우기가 짧아지고 있다며 걱정을 했다. 지구 온난화가 이곳도 예외가 아닌 듯 싶다.
인니는 일년 내내 평균 기온이 25도에서 30도를 웃도는 열대 고온 다습한 기후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지 않고 우기와 건기로 두 계절로 나뉜다. 4계절을 갖고 있는 우리와는 계절의 개념이 조금 다르다.
우기에는 열대성 소나기인 스콜이 자주 있는데,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씩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스콜이 쏟아지기 전에는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스콜이 내릴 것을 경고했다. 인니 사람들은 언제 스콜이 내릴 지 대충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한 시간 후엔 소나기가 쏟아질 거야 하면 어김없이 쏟아져 내렸다.
우기는 10월 ~ 4월, 건기는 4월 ~ 9월까지 인데, 여행 성수기는 건기다. 우기라고 해서 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소나기(스콜)가 한 두 차례 몰고 가는 것이라 여행이 불가능하진 않다. 오히려 스콜 전후로 날씨가 서늘해서 더위 타는 사람에게는 유리할 수도 있다. 더운 것보다 추운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우기 여행이 나름 매력이 있었다. 마지막 주에 우기를 잠깐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게다. 초반부터 비가 왔더라면 달랐을 듯^^
우기 여행의 장점은 이때가 비성수기라서 방값이 성수기 때보다 저렴하며, 방 구하기 용이하다. 유명 관광지도 조금은 한적한 편이다.
하지만 오지 여행을 할 사람들은 우기 때 여러 모로 많이 불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지엔 비포장 도로가 많아 비가 내리면 교통 불편이 가중되고, 차량이 오래되어 방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차 안으로까지 비가 쏟아져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차 안에 앉아 비 맞는 것을 새로운 경험으로 여긴다면 다행이지만 축축히 젖어오는 엉덩이를 느낄 땐 죽을 맛이다. 인니의 로컬 교통 수단은 방수가 잘 안 된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배낭을 감쌀 수 있는 큰 비닐이나 커버 등은 반드시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창문이 닫히지 않거나 부서져 있는 경우가 많아 비가 차 안으로 맘껏 내리치니 우기 때엔 되도록 창가에 앉지 말고 가운데에 앉는 것도 요령이다. 단거리 구간의 공공 교통수단인 미니 봉고인 베모의 경우, 큰 짐을 차량 꼭대기에 싣는 경우가 많은데 우기 때엔 배낭을 차 안에 싣는 것이 현명하다. 차 안이라고 비 안 맞는다는 보장을 받을 수도 없지만~
여행 최대 성수기는 7,8월인데 제일 많이 몰려오는 관광객이 호주 사람들이라 한다. 아이들 방학을 기점으로 몰려오는데, 이때에는 방값이 많이 오른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 최대 명절인 라마단 기간이 현지인들의 최대 성수기다. 이때에는 호텔 방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방을 구하는 일이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한다. 라마단은 약 한달 동안 지속되는데, 이슬람력으로 매년 날짜가 바뀌며 보통 8,9월이다. 그 해에 라마단이 언제 시작되는지 알아보고 그때엔 되도록 여행을 피하는 게 좋다. 이외에 인도네시아의 성탄절과 같은 휴일이 겹치면 방을 구하는 일이 어렵다. 인니 사람들도 휴일이 겹치면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예약을 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